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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2024년의 마지막 달력을 찢으며.

올 한 해도 역시 정말 많은 곡과 함께했다. 연간 수많은 곡들을 믹스했는데, 정말 많은 곡이지만 한 곡 한 곡이 내게는 새로움이고, 도전이며 또 즐거움이었던 것 같다. 곡 작업은 언제나 새롭고 즐겁다. 하지만 식은땀을 유발하는 각종 시련도 있었는데, 그중 단연 최악은 바로 인텔 13~14세대 CPU의 불량 이슈였다. 23년 초에 큰맘 먹고 작업용 PC를 인텔의 13세대 CPU인 13900K 기반으로 새로 조립했었는데, 이놈이 잘 굴러가다가 언제부터인가 수시로 블루스크린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블루스크린이 처음 발생했을 때만 해도 CPU의 불량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사실 블루스크린이라는 것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PC 사용자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원인을 알아내는 일도, 그걸 해결하는 일도 쉽지 않은 고난의 행진이다. 나 또한 블루스크린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 이벤트 뷰어의 오류코드도 뒤져보고 기본적인 응급조치부터 수일간 별의별 것들을 검색해 가며 원인과 해결방법을 찾아보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상상해 보라. 나의 수 시간 동안의 믹스 작업물이 어느 순간 갑자기 띄워진 시퍼런 비명과 함께 송두리째 날아가는 것이다. 뒤늦게 Ctrl + S를 잊은 나의 안일함을 탓해 보아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프로툴즈의 자동 세이브 기능과(사랑해요. AVID) 반복되는 블루스크린에 대비하기 위해 10초에 열 번씩 Ctrl + S를 눌러댄 나의 약지와 중지 덕에 넘긴 위기만 수십 번. 안 되겠다 싶었던 나는 PC 부품을 모두 분해하고 각 부품을, A/S센터를 통해 점검하기에 이르렀고, 원인이 CPU였다는 사실과 최근 13, 14세대 CPU 들에서 나타나는 불량 이슈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CPU를 교환한 후에도 이슈는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맥으로의 전환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식구 Mac Studio)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모니터가 사망했다. 이사하면서 급하게 구입했던 중소기업 모니터였는데, 작업 중 여러 차례 깜빡이며 예고를 하더니만 마지막 곡을 바운스하는 동시에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 그 후에도 멀쩡하게 돌아왔다가 다시 간헐적으로 깜빡이다가 꺼지는 것을 반복했고, AS센터에서는 패널 불량을 선언했다. 불행히도 모니터의 무상 A/S 기간은 종료된 후였고, A/S 센터에서 안내한 패널 교체 비용은 해당 모니터의 신품 구입 가격에 육박했다. 결국 그냥 새로 하나 사기로 했다.
(새 모니터)
그 밖에도 Mac OS로 넘어오면서 발생한 다양한 오류중에서 나를 가장 괴롭혔던 예고 없이 프로툴즈가 종료되는 오류 등(해당 오류는 여러 차례 오류를 겪으며 특정 플러그인을 인서트하면 프로툴이 예고 없이 종료됨을 발견했고, 해당 플러그인을 비활성화함으로 해결하였다.)자꾸 넘어야 할 벽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문제의 플러그인)
다양한 이슈들을 겪고 나니, 역시 작업 환경의 안정성과 데이터의 추가 백업에 대한 필요성을 더 크게 느꼈다. 기존에도 개인 HDD 백업 디스크와 회사의 NAS 서버에 이중으로 백업하고 있었으나, 이에 더해 개인 NAS 서버(음원이 아닌 프로젝트 저장용)와 Dropbox를 활용해서 총 사중으로 백업하게 되었다.
작년에는 한 해를 돌아보며 24년에는 더 넓은 업무영역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자는 결심을 하였다. 회사가 성장하고 더 다양한 고객층을 공략할수록 콘텐츠 팀에 요구되는 콘텐츠의 질은 높아진다. 콘텐츠의 질적 성장을 위하여 끝없는 연구와 학습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아닐까? 나 역시 24년 한 해 동안 열공모드에 돌입했다. 덕분에 믹스의 전반적인 품질뿐만 아니라, 워크플로를 성공적으로 개선하여 더 효율적으로 요구되는 사운드에 근접한 믹스를 할 수 있게 되었다.
24년은 콘텐츠의 질적 향상이 눈에 띄게 컸던 한 해라고 생각한다. 다만, 콘텐츠의 질적 향상만큼이나 내 음원의 음향적 완성도에 대한 눈높이도 높아졌기에 아쉬움 또한 분명히 있는 한 해이다. 2025년에는 이러한 아쉬움들을 개선할 수 있도록 기술적인 향상을 꾀하고자 한다.